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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 그것은 인간과 낭만의 이야기
무협을 논할때 많은 이야기가 오가지만 개인적인 견해를 들때


무(武),협(俠),정(情)의 세가지를 항시 거론해오는 편이었다.



무협의 기원이 삼국지와 수호지라고 하는 이야기가 종종 있다. 그런데 현대의 무협이라는 장르를 보면 이것은 역사속에서 이뤄지는 이야기를 다루는 삼국지보다는 [역사에 반하는 호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수호지가 오히려 그 맥락이 진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수호지가 무협의 원천이라고 봐도 무방한것이, [무협]이라는 단어를 성립하는

호걸의 놀라운 능력 -> 武 로 볼 수있으며
국가와 체제에 반하더라도 아닌것은 아니다. 라고 외치는 -> 俠 이 있다.

그럼 情은 어디서 등장하는가?


이것의 등장에 대해서 솔직한 말로 잘 모르겠다.


다만 중국의 현대무협의 시작점으로 볼 수 있는 1930년대의 무협에서는 이미 情의 모양새가 등장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왕도려의 청강만리, 국내에서는 영화 와호장룡으로 잘 알려져 있음)


중국에서는 역사가 패권과 정치이권의 다툼이 많이 정리가 잘 되어있고 그러한 역사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는 [국가적 대의를 위해서 소수에 대한 배려가 모자라지는 경우가 종종 등장한다. 혹은 국가나 한족의 대의상 등장하는 영웅에 대한 경의만을 표하는 이야기가 많을뿐, 개개의 인간군상에 대한 이야기가 적은 편]


이런 바탕에서 나오기 시작한 중국의 무협은 굉장히 [개인적]인 글의 표상으로 봐야 한다.


- 실제로 초창기의 무협작가중 하나인 양우생의 작품을 읽어보면 그의 작품은 국가적인 대의보다도 인간 개개인의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어했으며, 그런 부분은 무협의 감성과도 맞물렸다. -


무협의 대표적인 이야기중 하나인 情이라는 것은 어쩌면, 중국의 오랜 역사에서 제대로 다뤄진적 없는 [인간군상만의 이야기]를 꺼내들기 위한 방편이었을것이다.



사실 여기까지 이야기를 거론하고 보면 김용의 무협은 꽤나 중국의 전통적인 부분과 혹은 새롭게 원하는 부분 양쪽 모두를 취했기에 그 시절로써는 꽤나 앞서간다고 볼 수있다.



즉, 간단하게 말해서 무협의 본질은 [개인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각종 초인이 등장해서 복잡한 사건을 쉽사리 해결해나가는 모양새와도 맞물려 간다. 아무리 초인일지라도 그들의 감성과 생각과 경험등은 모조리 인간이라는 부분에서 시작한다. 그런 인물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바로 그렇게 이어져 갔으며, 여기서 중국이 전통적으로 좋아했던 요소인 무와 협이 결합해서 현재의 무,협,정이라는 코드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고 본다.



이런 [인간군상의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무협에 잘 접근하는 한국 작가를 몇명 뽑으라고 한다면
일단 임준욱과 최후식이라는 작가를 아주 절대적으로 빼놓을수 없다.


사실 무협의 경향성을 놓고 보면, 초인의 고난과 성장과 평화에 도달하는 일대기를 그리는 방식이 가장 흔하게 나오고 있는데, 이는 김용의 작품중에서도 의천도룡기나 소오강호, 혹은 고룡의 비도탈명, 혹은 와룡생의 작품들을 변주한대서 기인한다고 본다.


그런 무협의 방식은 무협이라는 것이 처음 인식된 이래로 가장 많이 쓰였으며, 어찌되었건 사람들이 기억해주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오래 기억해주던 무협은 아이러니 하게도 [애정을 다루는 작품]이었다.



[동사서독]과 같은 작품은 진짜 특이한 케이스이긴 하지만 아직도 우려먹는 김용의 [신조협려]나, 혹은 [소오강호]등을 놓고 보면 김용의 작품중에서 그 어떤것보다도 情에 몰두된 작품이다. (소오강호나 신조협려나 둘다 상사병때문에 목숨을 잃을뻔한 케이스...
천룡팔부의 단예처럼 우직한 주인공이 아니기에 그 골머리 앓는 모습은 옆에서 보면 진짜 속이 터진다)



실제로 정에 대한 애절함을 끓일수록 무협은 오히려 그 생명을 이어갔으며 그에 따라서 작품의 해석도는 매우 넓어지기 마련이었다.


다만 한국에 와서는 그러한 무협은 드물게 되었다.


한국의 무협 시효는 어디서부터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고 김광주 선생이 정협지를 번안/개작해서 낸것을 시작으로 알고 있다. 당시 중국 무협은 1960년대로 한창의 절정기를 뽐낼 시점. 이 시기에 국내에 들여온 무협의 경향은 정말 불분명했다. 하지만 그만큼 다양하고 이모저모로 뛰어났다.


허나 이 시기의 무협의 특징이 녹아난 부분은 역시나 1980년대 도달한 대본소 무협에서 드러난다. 대본소 무협은 까놓고 말해서 이 1960년대 성행한 고룡+와룡생의 마이너 카피다. 그 작품들을 다 본것은 아니지만 그 시기를 대표할만한 작가들의 작품은 이미 [낭만적인 범주]로 봐줄만한 무의 표현을 넘어섰으며, 와룡생의 주인공들처럼 나름 신의있고 멋진 인물로 등장한다. 그렇지만 고룡의 주인공들처럼 여자를 많이 끼게 되었으며, 세계관 자체는 이미 팬터지의 영역에 접근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근 10년간 진행되오면서 무협의 이미지는 그렇게 굳었다.


1990년대에 좌백과 진산이라는 작가들을 필두로 신무협이라는것이 생겨났지만 이 작품들은 중국무협이 탄생하게 된 배경보다는 [무협내에서 다른 장르에 대한 혼재] 가 테마에 가까웠다. 이는 신무협이라기 보다는 지금의 용어로 말하면 [크로스 오버 무협]
이라는 말이 가깝다. 그런데 문제는 무협의 가장 테마적인 [인간군상 이야기]보다도 장르자체로 이뤄지는 실험적인 구도 부분에서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러면서 무협은 대중과 거리를 두는 모양새를 떠안게 된다.


좌백과 진산이 뛰어난 작가임은 부정할 여지가 없지만 이들의 작풍은 무협으로써 받아들이기에는 기존 무협독자들이 바랬던 부분과는 틀린 부분이 상당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무협의 선구자냐? 그건 아닐것이다. 아무래도 상업성을 뗄 수 없는 장르계열에서 상업성의 실패를 놓고 말한다면 그들은 새로운 무협을 창조했다는 표현보다는 무협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봤던 사람들로 봐야 하는게 맞을것이다.



과연 한국의 무협의 주소는 어디인가,



비뢰도를 놓고서 신무협 오리엔탈 판타지라는 아주 거창한 이름이 붙은걸 보고 실소한게 벌써 12년전 일이다. 근데 지금도 똑같다. 웃겨 죽겠다. 비뢰도는 아무리 좋은 평가를 해줘봐야 과거의 유산을 현대의 센스로 맞춰서 탈바꿈시킨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수 없으며, 작풍으로 말한다면 오히려 예전의 고룡만한 팬터지성을 가진것도 아니다.

무협에서 사회비판을 어줍잖게 하려드는 비뢰도는 최악이다. 무협이 사회비판의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양우생이나 고룡처럼 소설에서 지나가는듯 던져놓고 생각해보게 하는게 제일 낫다. 비뢰도처럼 대놓고  이야기를 지껄이면서 있는자에 대한 욕을 하거나 혹은 그 이야기를 들이미는것은 독자로 하여금 이미 불편함의 극치를 떠안게 만드는 것이다.

개인적인 견해를 놓고 말하면 독자에게 훈계를 하면서도 가장 거부감이 없는 작가로 임준욱을 든다. 임준욱의 소설의 테마는 진짜 상식적인 테마가 많다. 부부간의 정, 혹은 부모자식간의 마음등등 이런 것을 무협에서 전통적으로 형성된 분위기에 잘 맞추기 때문에, 그는 [사람냄새 나는 무협작가] 라는 평을 얻는다. 사실 그의 작품은 어찌보면 독자에게 고하는 일종의 일갈일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거슬리지 않다.


최후식은 [표류공주]하나로 한국 무협의 전설이 된 자 인데, 그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중국무협에 있던 [낭만]의 미학과 미덕을 정말 고스란히 받은 몇 안되는 정통 후계자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 한걸음 더 나가는 무서움을 보여준다. 최후식의 작품속에서 발버둥치는 인간의 모습은 자기를 생각해보게 되며, 혹은 그것이 성공이든 실패든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아름다움을 가장 부각한다. 그는 남들이 보기에 추악한 욕망일지라도 그 또한 인간의 아름다움일수 있으며, 슬프고 버러지 같은 인생이 될지라도 그 또한 인간이 즐거워 할 수 있음을 가장 잘 보여준다. 그렇기에 그 또한 다른 의미에서 [인간]이 살아 있으며 [낭만]의 무협작가인것이다.




이리 쓰다 보니까 어느새 내가 좋아하는 한국무협작가 둘에 대한 격찬이 되버리고 말았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중국의 무협은 [인간의 이야기]이던가 혹은 [중화풍의 낭만]을 추구하는 작풍으로 크게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김용의 작품에 대한 스케일이나 혹은 고증, 이런것에 대한 칭찬이나 그런 부분에 대한 재미있음을 거론하는 이야기가 종종 있는데
이것은 김용이 [중국인]이라서 가능한 부분이었다고 본다. 중국의 역사서를 감안해봐도 그 무엇보다 정치와 전쟁에 대한 영웅이나 자료 정리가 잘 되어 있으며 이런곳에서 삼국지같은 작품 하나 튀어나오는거 보면 그건 확실히 한국과 차이가 크다.



중국과 한국의 차이를 감안한다면, 과연 우리가 좋아할 무협은 어떤 방향을 바라보게 될것인가.

by 그란덴 | 2009/03/19 11:31 | 껍질에 새겨진 글자들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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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주전자 at 2009/03/19 11:59
김용할배 다시 글쓴다면서요.
우왕굿.
Commented by 그란덴 at 2009/03/19 13:12
이 아저씨 안보고 스크롤 내렸지 -_-
Commented by 주전자 at 2009/03/19 14:01
내가 언제 저걸 다보고있어 ㄱ-
Commented by 카지스토 at 2009/03/19 13:36
서양 판타지 소설을 읽을 때에도 그렇지만, 중국 무협 소설을 읽을 때에도 국내 출판물에선 찾아보기 힘든 '딱딱함' 같은 게 느껴지는데, 그게 아마 본문에 언급된 이유에 기인하는 듯.

물론 본인은 그러한 외산의 딱딱함도, 국산의 유들유들함도 사랑합니다. '血')
Commented by 그란덴 at 2009/03/19 13:37
번역의 문제도 있겠지만 저런 정서적 차이가 크게 작용할껍니다. 중국은 기록을 잘 해놓은 국가중 하나인만큼, 어떤 면에서는 직접 맞대야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는 모자라게 적어놓은 감이 크죠. 그런것은 중국의 글 전체적으로 어떻게든 영향을 끼칩니다.


최근에 중국통신소설이라고 나온거 몇개 봤는데 오히려 한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깰정도로 캐릭터 묘사가 집중적이더군요 (....)
Commented by 카지스토 at 2009/03/19 13:41
일본 출판물/영상매체 등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국 장르소설들 중에서도 그와 비슷한-캐릭터성에 중점을 두는- 물건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더군요. 라이트노벨을 지향하는 브랜드가 아닌, 기존의 판타지/무협소설 시장 쪽에서도 말입니다.

중국의 통신소설들도 그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것일는지.
Commented by 그란덴 at 2009/03/19 13:44
그쪽은 그냥 연애소설이 굉장한 인기를 누리고 있죠. 장르소설이라는건 딱히 의미는 없고 아마 지금 중국은 한국의 1990년대 중~후반기에 거치던 모양새를 더 급진적으로 밟아나가는듯 합니다.


근데 인구가 하도 많아서 아마 한국보다 더 다양한 펄프픽션들이 등장할꺼예요 (....)


김용이 예전만 못하더라도 그의 복귀자체는 중국의 지금 새롭게 등장하는 추세에서는 큰 보물이나 마찬가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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