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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풍무적 - 한국무협에서 이제서야 시도된 그것.



연풍무적은 정말 제목 그대로 [연풍이 무적이다]



연풍무적은 문피아에서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작가는 수부타이라고 한다.
문피아내에서 [굉장히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작품]이라는 평을 들었는데.


자. 과연 어디서 나온 말일까.


우리나라의 무협층이라면 크게 둘로 갈라 볼 수 있을듯 하다.
첫째는 고 김광주선생의 [정협지]이래로 먼저 불거진 고룡/와룡생의 파로 이어지는
1980년대 이전의 속칭 [아저씨]파 (지금 와서는 40대~60대층이 주로 이럴것이다)
와 1986년에 등장한 김용과 양우생을 접하면서 자란 세대로 (20~30대층) 나눠진다.

중국무협을 기준으로 열심히 나누는건 안타까운일인데, 그만큼 무협을 보는 층의 시각이 중국무협기준으로
나뉜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게 된다.




허면, 이 글의 중심인 연풍무적은 과연??


하지만 그 전에, 무협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더 훓어보고 가자.


고룡과 와룡생은 참 다른 작가였다. 중국전통적인 영웅스토리를 전개하는 와룡생과
그야말로 서구문물에서도 당시로썬 찾기 힘든 신기한 이력의 인물들을 가지고
다양한 스타일로, 그것도 하드보일드한 전개를 주로 이뤄낸 고룡은 정말 극과 극에 가까웠다.


이들에서 국내 작품들이 취했던 것은, 와룡생이 써내려간 [중국의 풍취를 느끼게 하는 배경]과
고룡이 잘 활용한 [신기한 인간 군상]의 두가지를 취해서 내려오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욕하는 대본소 무협, 혹은 구무협이라 불리는...이러한 것들의
근본을 파면 그렇지 않을까.


이런 무협은 1990년대 말에 나왔던 사마달&검궁인의 공저인
[월락검극천미명 - 달은 칼끝에 지고]에서 그 끝을 본다.
사실 끝을 보았다는 느낌보다도, 와룡생과 고룡이 추구했던 방향성을 그나마 제대로
잡아내서 쓴 마지막 구무협 명작이라고 할법할것이다.


한국의 신무협은 이런 고룡과 와룡생을 다시 짚어보는 방향에서
(정확히는 한국이 기존에 받아들였던 방법과는 정 반대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따지고 보면 무협속에 철학과 여러가지 장르가 들어가게 되는 작업을 수반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신무협은 가뜩이나 층이 넓지 못한 무협속에서도 또 일부의 사람들만 챙겨보는
그야말로 매니아 오브 매니악 한 층으로 바뀌게 되버렸다.



그래서 구무협/신무협이란 말을 나는 싫어한다. 그것은 결코 지지를 얻은 장르가 아니며
엄연히 말해서 그냥 한국의 무협계가 기존의 자기들 모습을 다시금 바꾸고자 한 시도일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협층의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 신무협이라 불렸던
작가들 대다수는 이미 사라졌고, 그 개파조사로 일컬어지는 좌백과 진산을 포함한
몇명만이 남아서 그저 신무협의 태두였다고 일컬어질 뿐이다.



반면에 아까 거론했던 20~30대층과 성장해온 김용과 양우생의 무협에서 보여지던
느낌은 실제론 살리는 척하면서 살려낸 작품이 전무하다고 싶을 정도였다.


즉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무협은 여태까지 고룡과 와룡생의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냐의
차이로 계속 진행되어 왔을뿐이란 소리다. 고룡과 양우생의 직전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김용과 양우생의 분석이나 혹은 그들이 집대성한 무협에 대한 이해는 모자랐고,
그렇기에 고룡과 와룡생이 가진 특이성에만 집중하여 보게 된것.



이것이 한국무협이 본질을 잃고 자꾸만 주변 이야기에 집중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건 개인적인 주장이지만, 그 어떤 무협이든 '무'와, '협'과 '정'을 빼놓고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무협의 본질은 낭만에 가까우며, 그렇기에 인간이 강함을 손에 넣음으로써 생기는
꿈과 카타르시스를 위한 '무'는 필수이다. 혹은 영웅스토리, 혹은 자기의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통쾌함을 찾기 위한 방향을 제시하는 논리. 이런것들이 합쳐저서 '협'
또한 일상에서 지내는 것보다 남자라면, 혹은 여자라면 자기들이 받고 싶었던 꿈 같은
애정담의 이야기를 모아서 '정'이라고 할것이다.


자위 아니냐고? 자위 맞다. 그리고 어떤 소설이든 이런 대리만족의 범주를 아예 포기하는
경우는 없을것이다.


무엇보다 시작자체가 당시 중국 하류층에게 읽히던 무협소설이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거나 혹은 기분을 풀어주는 이야기는 당연한 것이다. 본질은 그러했다 본다.
그 속에 자기가 담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것은 그 나중 이야기라고 본다.
그렇기에 무협은 쓰는 쪽에서는 뭐가 틀이 큰데 비해서 그 속에서 헤매는 기분이 아닐까.



여하간, 이야기로 돌아가면 김용의 글도 역시 어찌 보면 그런 맛이 많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김용의 전기/중기시절의 작품인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나
딱 중기작인 소오강호 정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기실 김용은 천룡팔부/협객행/원앙도/벽혈검 정도만 가면 이미 자기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있다.


최후의 작품 녹정기 정도 오면 이미
[모든 상황을 개그로 바꾸면서 한편으로는 위에 말한 무협의 라인에 충실]하고 있다.


요컨대, 김용시절에 주는 전반기에는 중국인들에게 힘을 주기 위한 영웅스토리,
그리고 후반기에는 현실에 대한 약간의 비관성을
(김용의 시기는 2차대전 직후 시기. 그리고 중국이 공산당문제로 시름시름 앓던 시절이다)
보태서 현실에 대한 풍자를 넣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였다.
이에 대해 김용 자신이 서구적으로 배웠던 소설기법을 굉장히 잘 응용했기에 50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김용의 소설은 우리가 보기에 전혀 무리가 없이 잘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작품이 왜 등장했는가, 이 상황은 뻔한대도 현실적인 이야기를 전혀 이해못하고
무협이라는 틀에 얽매여서 김용도 멋대로 해석하려고 시작한 90년대 말의 소설들이다.
아니, 정확히는 이 시기의 무협은 대여점의 인기든 혹은 종래 다른 곳의 인기든
정확히 말해서는 일본의 스토리텔링과 학원만화가 무협이라는 틀 속에서 재탄생된 경우거나
혹은 무협의 전형적인 영웅스토리를 변주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기이한 인물]이라는
이미지만 가지고 먹고 사는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러한 두가지의 경우가 오히려 지금와서는 [정석이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것은 한국의 사회적풍조와도 관련이 있긴 하다. [나쁜 남자]가 인기 있고, 팜므파탈이
왠지 매력적이다.
우등생에 대해서는 재미없고, 순진하다는 소리는 자칫 악의로 까지 들린다.


이런 풍조에서 중국정통파에 가까운 영웅스토리를 재현하면 자칫 그것은...글을 떠나서
작풍이 굉장히 지루하게 보일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작가들이 중국무협을 해석하는건 집어치우고 현재 존재하는 클리셰들을 가지고
자기 편할대로 자기류의 무협만 자꾸 거듭했는데. 이건 이미 어디서 나왔으며
왜 굳이 [무협이란 타이틀을 붙이는 지]이해할 수 없는 정도로 까지 이르르고 있다.
복수극을 하려면 무협말고도 방법은 많은데 왜 굳이 무협을 함이며,
강자로써 모습을 뽐내주고 싶다면 그것 또한 방법이 많은데 왜 굳이 무협을 함이냐


이는 무협이 가진 매력을 깨닫지 못한채로 무협을 써갈긴 작가들의 모습이다.


무협은 고증이 크게 필요하진 않다. 하지만 위에 거론한 작가들은 저런식으로
[자기가 안맞는거 어거지로 끼워맞춘다는것]을 느끼기라도 한듯 유달리 설정놀음에
치중하는 꼴을 보인다. 그야말로 꼴사납기 이를데 없음 -_-



그런 와중에 무협에 대한 새로운 시도도 점점 등장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역시 무협에 대한 완전한 이해로 등장한 작품들은 아니었다.
결국 지금 우리가 보는 무협들의 모든 형태는 [김용]과 [양우생]에서 출발하는데
정작 우리는 이 무협에 대해서 [양우생]하면 뭐 썼는지 조차 잘 아는 사람이 드물다.
그만큼 뭘 보는지 이해가 부족한채로 무협은 단지 저질장르라는 인식만 박혀갈뿐 -_-



여기서 정리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무협의 형태가 어떤것인지 직감적으로는 이해를 하고 있다]


라는것.







서문이 길었다.





연풍무적이란 소설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니가 이렇게 빨아대느냐?
라고 물으면 그에 대한 답변은 내가 딱 집어서 줄 수 없다.
나는 제대로 된 평론가도 아니요. 중국문화연구가도 아니며, 단지 무협을 10년 넘게 본 독자일뿐이다.


드라마로 치면 아마도 1986 의천도룡기가 나의 최초 무협 드라마였던 듯 하다.
그리치면 몇년을 본거지......거의 20년은 본게 아닐까 (....)


잡설은 각설하고, 연풍무적에 대한 이야기를 좀 풀어야지 (명색이 연풍무적 감상문인데...)


연풍무적이라는 소설은 전형적인 [협객성장]에 대한 근거를 두고 있는 소설이다.
이는 김용의 사조영웅전에서 이미 잘 드러난 형태인데, 필연보다는 우연에 근거하지만.
주인공 나름대로 정의와 신의를 갖추었기에 그러한 자에게 주어지는 인연이 과하다고
느끼지 못할, 그러한 상황의 연결연결이다.


주인공 진소락이 시작하자마자 망가진 몸으로 나왔을때, 무협을 많이 읽은 독자라면
[뻔하구만]이라면서 혀를 차게 될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 뻔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방법에 있어서도 그 나름대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몸이 망가져서 힘도 없고 아무것도 안됨에도 백리검가의 위험을 모른척하지 않으며
조운당에 대한 불의를 참지 못하고 달려든다. 이것은 사조영웅전에서도 강남칠괴에게
훈육 받았던 곽정의 모습과도 같다. 진소락의 경우 어릴적 성장이 많이 가려지긴 했지만.


사조영웅전과 대조를 시도한 이유는 다름 아닌 이 소설이 제목에 비해서 [영웅담]의 비중이
꽤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명히 연풍무적 1,2,3권까지 오는 사이에 1~2권의 부분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이것은 이 소설이 나름 독자로 하여금 [뻔해보이는 주제에 호감을 얻는]
무협의 방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뻔하지만 그러면서도 호감이 되는 방식의 무협전개는 김용뿐 아니라 무협작가들 대체적으로
아니, 따지고 보면 소설작가중에서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스타일로 전개할시에는
상당히 많이 보이는듯 하다. 주인공이 [정론]을 펼칠수 있는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으며
그러한 고난을 극복하기 위한 실마리를 계속 주어주는것 (중요한건 실마리지 완전한 해결이 아님)



연풍무적의 초반은 이렇게 [고난과 핍박속에서 성장해가는 영웅]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면
2권 중반부부터는 왠만한 연애소설 뺨칠만큼 달콤한 스토리의 전개다 (//ㅁ//)



연풍무적의 작가 수부타이가 이 부분을 노리고 쓴 거라면, 이 사람은 정말 트렌드라는것에 대해서도
게을리 하지 않는 무서운 작가라고 말하고 싶은게 개인적인 심정이다. 주인공과 기연으로 얽힌
조운당 신녀 우희, 주인공에 대해서 유교적인 약속으로 얽힌 백리검가의 상속녀, 스승에게서
넘겨받은 미워할수 없는 요녀까지, 이 세명의 아가씨와 뒤얽히고 꼬이는 모습이 오히려 너무도 좋다.


보통 연애소설에서 볼 수 있었던 제대로 된 꼬임새를 보여주고 있는데, 얼마전에 내가 거론했던 소설인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보다 더 로맨스 부분에서 충실한걸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이 아저씨야. 명색이 무협주제에 왠만한 로맨스 소설은 싸다구 후려칠 정도로
이렇게 달콤해서 어쩌자는거야 (....) 물론 남성향 중심이라는 경향이 좀 짙기는 하지만 -_-



이 소설은 이렇듯, 고룡이전에 무협에서 중시했던 [인물의 완성에 이르는 방법]과 [인물의 관계]에 따른
부분에서는 굉장히 그 시절의 맛깔을 잘 챙겨왔다. 고룡보다도 양우생이나 김용이 확실히 생각나는

[이 고전적이면서도 명백히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클리셰]

를 무협으로 제대로 구현화 해내는 거의 내가 본 첫번째 한국무협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정말 그간 한국무협에 대해서 뭐라뭐라 해오고 욕하고 혹은 칭찬하기도 하고 해왔지만.


정작 [베끼기]라도 좋으니까 중국무협의 장점이 뭐였는가를 딱 짚어내서 비슷하게라도
적어내린 글이 없어서 뭔가 부족하다 느끼던 차에, 오히려 지금 이런 시점에...
중국에서 조차도 예전의 무협과는 뭔가 다르다면서 고평가 받는 무협이 없는 시점에
한국에서 이런 무협이 나온것은, 한국 무협이 자기를 새롭게 돌아보고 다시 탈바꿈할 계기를
얻어낸게 아닌가 싶다.


이 소설은 진실로 무협에 대해서 잘 몰라도 재미있는걸 찾는다면 봐둘만하다.





덧. 진리의 서교 질투하는게 너무 귀여워서 뿅가죽겠습니다!?
by 그란덴 | 2009/09/10 08:06 | 껍질에 새겨진 글자들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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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kirhina at 2009/09/10 09:53
한번 봐볼까 ㅋㅋ
Commented by 그란덴 at 2009/09/10 14:28
추천추천 서교는 진리임 ㅇㅅㅇb
Commented by 꼬꼬댁꼬꼬 at 2009/09/10 10:07
커 연풍무적좋아하시는분 발견해서 기쁩니다 ^-^
Commented by 그란덴 at 2009/09/10 14:28
어머나 닉 바꾸셨네용 ㅇㅁㅇ;;; 연풍무적 연재때부터 좋아했어요!
Commented by 류시엘 at 2009/09/10 10:38
4권빨리 내주세요 현기증난단말이에요
Commented by 그란덴 at 2009/09/10 14:28
동감 ; ㅅ; 서교와 우희가 만나는 모습을 보고 싶단 말예요!
Commented by 작무 at 2009/09/10 11:42
기존의 클리셰들을 무협을 통해 담아내는건 무협이라는 장르가 가진 매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물론 망작들에 대해선 저도 가차없습니다만) 물론 정통이 가진 무게감도 있겠지만 자의적 해석을 통한 아류들의 탄생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게 망작이건 수작이건 간에 새로운 단초를 제시할수 있는 것이고, 하나의 장르로서 정체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기담에 관해서 라면 무협장르의 특징에 녹아날수 있는 기담이 있을 것이고, 복수극역시 무협이기에 가능한 복수의 형태가 있을겁니다. 정통에 관한 문제는 잊지 않아야 할 문제이지 반드시 회귀해야할 문제라고 까진 생각되지 않습니다. 저로서는,
그리고 하나 더 집고 넘어가자면 위 글의 전개상 수부타이님 이외에 현재의 무협작가는 마땅찮은 사람이 없다. 라고 보입니다만... 물론 개개인의 기준이 다 다르겠지만 훌륭한 필력을 가진 분은 그외에도 상당히 있다고 생각합니다.(설봉님이라든지... 권용찬님이라든지...)
Commented by 그란덴 at 2009/09/10 14:30
작무//

제가 중점을 두는 부분은 [애시당초 정통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이 없었다]라고 보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그런 정통에 대한 연구가 부실했다고 보고 그 점에서 수부타이라는 작가를 높게 치는겁니다. 다른 작가가 아예 부실하다는 이야기를 한게아니죠.


회귀 문제도 아니고 과연 [정통파]에 대한 연구나 혹은 이것이 어떤게 장점인지를 제대로 짚어냈느냐고 묻는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한국무협이 [오! 그래 우리는 이미 했다!]라고 할만한 작품을 보여준적은 전무하다고 봅니다.


수부타이님만 작가라뇨. 전 굳이 우선순위로 놓고보면 임준욱님을 더 좋아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적자를 계속 기다리는 중이죠(빨리 내주세요 ; ㅅ;)
Commented by 꽃장비 at 2009/09/10 16:57
에로타이!! 에로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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